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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대한경제]“과도하게 평등 간여하면 ‘독재’… 독서가 국가성장 토양”
작성자 인문학박물관관리자 날짜 2022-01-26 09:28:12 조회수 2425
103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한강포럼’ 특강 지상중계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10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제 정세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안윤수기자 ays77@


90세 넘으면 할일이 없을 줄…

95세 때도 연 150회 넘는 강연

독서 통해 공부하니 자꾸 일 생겨

수영으로 몸과 정신 균형 잡아 

요즘 정치인들 이야기 들어보면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걱정돼 

韓, 권력사회→법치사회로 발전

이제는 상식ㆍ양식의 ‘질서사회’

최근 법이 권력유지 방편 전락



[e대한경제=이경택 기자]  “오래 전 일입니다. 정석해(1899~1996) 교수님이 저에게 ‘김 교수,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더라?’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76세입니다’라고 답했죠. 그랬더니‘좋은 나이올시다’라며 웃으셨어요.  그래서 더욱 열심히 살았습니다.”

지난 21일 지하철 서대문역 인근 ‘바비엥2’ 교육센터에서 열린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의 ‘특강’은 우리 시대 최고의 석학 중 한 사람이며 상수(上壽, 100세)를 넘긴 원로의 현장 강연인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50여명의 청중들은 경청하고 박수를 치며 공감했다.

강연은 국내 정ㆍ재계 문화계인사들 모임인 한강포럼(회장 김용원)에 의해 마련됐으며 타이틀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였다.

정석해 교수와의 일화는 100세를 넘긴 나이에도 강연을 하고 원고를 쓰는 김 교수의 치열한 삶을 상징해주는 대목이었다. 1920년생인 김 교수는 한국 나이로 103세, 만나이로는 102세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정석해 교수는 3ㆍ1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로 해방 후 연희전문 교수로 후학들을 양성했다.

간혹 어눌한 대목이 섞이기도 했지만 쉼없이 이어지는 그의 말투는 또박또박했고, 정확한 기억력으로 본인의 견해를 정확히 밝혔다. 논리적으로 이어지는 말의 ‘결’에는 젊음마저 넘쳤다.

“70대 초반 되면 사람들 대부분이 ‘늙었다’며 일을 그만두죠. 그렇게 되면 안 늙어도 되는 사람이 늙어버려요. 저는 70 넘어서도 열심히 살았지만 그래도 나이 90이 넘으면 할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95세가 돼도 자신감이 여전했습니다. 연간 150회가 넘는 강연회에 다니고, 신문 연재도 했죠.”

고령화 사회에 새겨들을 만한 얘기였다.

“100세 나이를 넘겨 내가 그처럼 일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일까 요즘 생각해봤어요. 몸은 늙어도 정신력은 키워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저로서는 공부를 계속한 것이 제 정신력을 유지해주었다고 봅니다.”


김형석 교수가 삼성출판박물관 관계자에게 친필 사인과 함께 써준 ‘독서’의 중요성에 대한 문구다.

김 교수는 독서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늙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독서다. 몰랐던 역사를 다시 알게 되고 우리 사회의 정치ㆍ경제ㆍ문화에도 자연히 관심이 간다”며 “그러면 자꾸 해야 할 일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얼마전 삼성그룹 사장단 모임에서 한분이 신입사원으로 일할 때 선배들로부터 독서를 권유받았다고 해요. ‘지도자가 되려면 독서를 해야 한다. 독서를 안하면 과장, 부장으로 끝나고 만다’라는 얘기를 듣고 열심히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말할 것이 아니라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독서가 애국입니다. 그런데 요즘 정치하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걱정됩니다.”

김 교수는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일제시대였죠. 아버님이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어요.

“항상 가족 걱정만 하고 살면 그 가정만큼밖에 성장하지 못한다. 친구들과 더불어 좋은 직장 만들고 사회에 기여하면 직장의 주인이 되고 그만큼 성장한다. 같은 사람이 민족과 국가를 걱정한다고 생각해 봐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민족과 국가만큼 성장할 수 있다. 살아보니 그 말씀이 맞아요. 그래서 책이 소중하고요.”

김 교수는 1960~70년대 김태길(1920~2009) 서울대 교수, 안병욱(1920~2013) 숭실대 교수와 함께 ‘철학자 겸 수필가’ 트로이카로 문명을 날렸다. 

“안병욱 교수가 유언처럼 전화를 걸어왔어요. 김태길 선생 먼저 가시고 우리 둘이 남았는데 아무래도 김 교수가 정신력이 강하니 못다한 일 다 마무리해줬으면 좋겠다고요. 안 선생과 김태길 선생은 만나면 항상 나라 걱정을 했어요. 김태길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가치관을 새롭게 창조해주지 않으면 철학이고 윤리도 없다고 늘 얘기했습니다. 그런 분들과 지냈기 때문에 제가 지금처럼 보람있게 살고 여전히 희망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죠.”

김 교수가 살아온 100여년의 삶은 우리 근현대사와도 맥을 같이한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강연을 마친 후 ‘한강포럼’ 회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약혼자 보고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 을 꾸릴 만큼 한가로운 때가 아니다. 당신은 더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난 민족과 조국을 위해 가정을 포기하겠다’.  3ㆍ1운동을 겪으면서 가정보다 국가와 민족이 먼저다 라는 그같은 의식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자리잡기 시작했죠.”

이어서 그는 대한민국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권력사회’에서 법과 상식이 통하는 ‘법치사회’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4ㆍ19를 겪고 전두환 정권 말기까지 우리는 아프리카나 동남아 후진국처럼 군대와 독재가 지배하는 권력사회였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부터 변화가 생겼습니다. 법치국가의 문턱을 넘어섰어요.”

김 교수는 ‘법치국가’의 다음 단계가 ‘질서사회’라고 정의했다. 김교수에 따르면 질서 사회는 ‘상식과 양식, 도덕이 우선시되는 사회’다.

“법치사회는 우리 70년 역사에서 거둔 고귀한 성취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진전이 없습니다. 지난해 여당에 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이라고 해 많은 이들이 반대했죠.  법이 최근들어 권력 유지를 위한 방편이 돼가고 있어요. 법이 정권 유지의 시녀가 된다면 그 사회는 다시 권력사회로 추락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생각을 밝혔다.

“법치국가가 질서사회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선 정의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됩니다. 경제도 평등, 교육도 평등, 문화도 평등… 부자의 재산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 나눠주자 이런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정부가 간여하면 독재국가가 될 확률이 높아요. 공산주의 국가가 그렇게 해 다 실패했습니다. 정의란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입니다. 빈부격차가 문제라지만 부자가 아무리 많아도 더 많은 사람의 행복과 자유를 위해 봉사한다면 그것이 정의라고 봅니다. 그나마 미국이 비교적 질서사회에 근접해가고 있어요”

김 교수는 국제적인 안목도 높았다. 그는 향후 한국과 중국, 일본 3개국이 아시아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우리 따라오려면 50년 정도 걸릴 듯합니다. 이는 ‘부(富)’를 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중국이 진보도 보수도 아닌 다 함께 사는 사회인 ‘열린 사회’가 되기 위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는 얘기죠. 아시다시피 중국은 아직도 대만도 우리것, 티베트도 우리것이라고 주장하잖아요.   사실 우리에게 제일 큰 문제는 북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중국입니다. 그래도 50년 정도 지나면 중국이 우리 수준으로 따라올 겁니다. 50년 뒤에는 중국, 일본사회와 손잡고 ‘열린 사회’를 만들어가야죠.

김 교수는 만 100세가 되던 지난 2020년 청와대에서 지팡이를 받았다. “설명서를 보니 조선시대엔 80세 넘은 사람에게 왕실에서 지팡이를 보내줬다고 해요. 지금은 80세에 이른 분들이 많으니 제가 100세가 됐다고 지팡이를 보낸 모양인데 수명이 길어지니 앞으로는 120세에 보내야 할 듯합니다(웃음).”

김 교수는 건강비결로 평소에 ‘수영’을 꼽았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계속되며 수영은 중단했다. 대신 산책을 많이 한다고 했다.

“전에 지방 강연갔다 오면 동료들은 피곤하다며 뿔뿔이 집으로 가기 바빴어요. 전 남산의 체육관 수영장으로 갔죠. 수영을 하면 오히려 피곤이 풀려요. 늙었다고 포기하지 않고 몸과 정신의 균형을 잡는게 제 건강비결이죠.”

김 교수는 국내 1세대 철학자이자 저명한 수필가다. 1920년 평남 대동에서 태어나 도산 안창호의 강연을 들었고, 윤동주 시인과 같은 반에서 공부했다. 일본 조치(上智)대학 철학과를 마친 후 연세대에서 30여년간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이경택기자 ktlee@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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