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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세 김형석 교수는 인생에서 뭘 할지조차 모르겠다는 20대 기자의 질문에 “모든 사람은 자기 길이 있다”며 “내가 갈 길을 택하지 않고 남이 가는 길을 따라 경쟁하려 하니 낙오감도 생기고 열등감도 생기고 하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지난 2월 7일 서울 서대문구 한 호텔 카페에서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만났다. 1920년생인 김 교수는 20대인 기자보다 4배 가까운 시간을 더 살아온 ‘백세 철학자’다. 지팡이도 없이 혼자 카페로 천천히 들어온 김 교수는 기자가 준비해온 2장의 질문지를 몇십 초 동안 조용히 살피고는 편안하게 말을 시작했다. 정확한 말씨로 1시간30분 넘게 쉬지도 않고 이어진 그의 답변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연결됐다. 몇 가지 일화나 비유, 자신의 경험과 조언으로 이뤄진 김 교수의 이야기는 산발적으로 나열된 질문의 핵심에 정확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방황하는 20대에 우리는 뭘 해야 할까?’
최근 김 교수는 100명의 일반인이 던진 질문에 답한 내용의 책(‘김형석의 인생문답’·미류책방)을 펴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 세기가 넘는 아득한 세월을 증언할 수 있는 그에게 쏟아지는 질문은 주로 ‘좋은 인생이 무엇일까’ 하는 거대하고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김 교수 또한 이런 열렬한 질문에 대해 언론 인터뷰, 칼럼 등을 통해 활발하게 답변해왔다. 그러나 이날 기자가 준비해간 질문은 상대적으로 ‘수준 낮은’ 질문들이었다. ‘교수님도 소셜미디어(SNS)를 하시나요?’ ‘연애는 고사하고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려워요’ ‘교수님 연세에도 후회를 하시나요?’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어요’ 등의 질문들은 기자가 주변 친구들의 궁금증을 그러모아 정리한 내용이다. 이날 인터뷰에 동석한 김 교수의 비서 이종옥 아가페복지재단 이사장은 “교수님께 뭘 그런 것까지 묻느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것도 낯선 20대에게는 ‘어른의 답’이 필요하기에, 청년의 특권을 업고 마음껏 질문을 던졌다.
김형석 교수의 20대
북한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 교수는 1939년 평양 제3공립중학교(구 평양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스무 살이 됐다. 김 교수는 대학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운 탓에 평안남도의 한 소학교에서 1년간 교사로 일해야 했다. 갓 스무 살부터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겪어야 했던 셈이다. 1941년 가족들의 지원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는 ‘조치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3년간 하이데거와 키에르케고르 등 철학자들의 책을 읽으며 원하던 공부를 실컷 하던 중 그는 학도병 징집 발령을 받았다. 1944년 당시 24살이었던 김 교수를 포함해 많은 한인 유학생에게 일본군으로 징용한다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김 교수는 어릴 때부터 약하게 타고난 신체적 결함을 인정받아 입대 ‘불합격’ 판정을 받을 수 있었다. 광복 후에는 해외 대학으로 유학을 가서 철학을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평양으로 돌아온 그는 2년간 공산정권하에서 농촌학교 교사로 일했고, 1947년에 월남하고서는 생계를 위해 7년간 중앙중학교(현 서울 종로구 중앙중·고등학교)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했다.
“나 같은 (월남한) 처지인 사람이 택할 만한 직업으로 학교가 1순위였어요. 중학생 때부터 ‘철학 공부를 하면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젊을 때 그렇게 못 했어요. 일제강점기 말에는 전쟁이니 학도병이니 해서 공부를 못 했고, 또 그다음 2년은 공산 치하를 살면서 학문을 계속 못 했거든요. 30대가 돼서야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좀 늦게 자리를 잡은 거죠.”
꿈꾸던 철학 공부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했던 김 교수의 20대는 지금 청년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취업준비생은 절실히 원하던 직업과 현실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가 많고, 직장을 잡은 사회 초년생들도 끊임없이 ‘이 일이 내게 맞나’ 고민하는 모습이 우리 시대 청년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김 교수는 “천천히 해도 된다”고 위로한다.
“나는 시대적 환경 때문에 공부도 잘 못했고, 남쪽에 내려와 당장 돈을 버느라 하고 싶었던 대학 공부도 서른이 넘어서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쯤 되면 성공한 셈이잖아요? 50~60세가 넘어서 누가 더 보람 있게 잘 살았느냐는 것을 봐야죠. 인생이 백 리 길이라면 20대는 30리 길도 안 되는데, 20대끼리만 비교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내가 대학에 가서 철학을 전공하겠다고 할 때만 해도 우리 어머니가 ‘취업이 안 될 테니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건 어떠냐’ 그러셨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내가 자리를 꽤 잘 잡았어요.(웃음)”
나만의 다리를 만들자
꿈에 도달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중요치 않지만, 김 교수는 20대에 꼭 ‘인생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학교 1~2학년쯤 돼서는 ‘내가 50~60대에는 이런 인생을 살아야지’라는 목표를 생각해봐야 해요. 이런 삶을 살아야지, 하는 그런 자화상이라고 할까, 꿈이라고 할까.… 그런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역경과 어려움이 많이 와도 다 이겨내요. 내가 젊은 학생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자존심을 가졌으면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적어도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믿음과 자존심 말이에요. 내가 살아보니까 그게 필요하더라고.”
하지만 지금의 20대는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48%의 대학생이 “취업만 된다면 어디든 간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앞선 우리 세대가 치열한 경쟁, 획일적인 가치관과 직업의 고저의식 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을 대물림해서 그렇다”며 “그래도 젊은 친구들이 항상 ‘내 갈 길은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우직하게 자기 길을 가면 길도 생긴다”며 비유를 들었다.
“우리 사회가 지금 한강이라고 치면,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지금 한두 개뿐이에요. 고시를 봐야겠다, 대기업에 가야겠다 등이죠. 사람은 많은데 다리가 한두 개뿐이니 뒤에 줄을 쭉 길게 서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다리가 열 개쯤 된다,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줄 서서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갈 수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흩어져서 자기 길을 찾아나가면 실업자도 줄어요. 모든 사람은 자기 길이 있어요. 그런데 내가 갈 길을 택하지 않고 남이 가는 길을 따라 경쟁하려 하니 낙오감도 생기고 열등감도 생기고 하는 것 같아요. 인생에 대한 책임을 든든하게 지고 가보세요. 남은 자기 인생을 내버려두면 손해 보는 거잖아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책을 읽고 자기만의 생각을 쌓아보세요. 존경하는 위인의 전기도 좋고, 정서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문학도 좋아요.”
3·9 대선의 최대 부동층에게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2030 부동층의 비중이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20대는 3월 대선의 최대 부동층으로 남아 있다.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의뢰로 실시해 지난 2월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대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지지 후보를 택하지 않은 18~29세 유권자 비율은 15.3%로,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높다. ‘정치 불신’이 다른 어떤 세대보다 강한 20대를 대표해서 “도저히 뽑을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내 스승 격인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지도자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도자를 만들 줄을 모른다고. 지도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들어오는 것도 아녜요. 우리 가운데에서 존경스러운 점이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 앞선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뽑으면 돼요. 사람이 어떻게 다 완벽한가요.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섰으니 자꾸 긁어 내리기보다는 믿어주고 뽑아줘야죠.
우리 고등학생들에게 강연할 적에 이 다음에 투표를 꼭 하라고 들려주는 얘기가 있어요. 30명이 탄 버스의 운전자를 투표로 뽑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승객 중에서 다섯 사람을 추려서 말을 들어봤어요. 누구는 ‘소형차밖에 운전을 안 해봤다’, 또 누구는 ‘트럭 운전은 해봤는데 승용차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중 제일 적합한 사람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럼 그 사람을 뽑아놓고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해요. 결정을 했으면 도움을 주고 그 사람 마음을 따라서 가야지, 운전도 못 하는 사람들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하면 나중에 책임을 질 사람이 있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보면 이쪽도 싫고 저쪽도 싫고 하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장점이 있는 사람을 뽑고 지도자가 된 다음에는 믿어주는 게 필요해요.”
그렇다면 20대 대선에서는 어떤 점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지도자를 결정해야 할까. 김 교수는 “과거에 바른 길을 걸었느냐”와 “그릇이 크냐 작으냐”를 따져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눈치 보고 출세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왔다갔다 한 사람은 안 돼요. 그 사람의 과거가 국민이 모두 걸어갈 수 있는 바른길이었느냐를 따져봐야지요. 그리고 정치가는 상식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릇의 크기도 봐야 해요. 다른 사람의 뜻도 들을 줄 알고,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할 줄 알고. 이건 뭐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벌써 다 알죠.(웃음)”
‘국민이 뽑은 지도자를 믿어줘야 한다’고 한 김 교수지만,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지도자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 “취임할 때만 해도 온 국민이 대통령을 믿었고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며 “그런데 대통령이 먼저 국민더러 ‘너는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이 국민을 버렸는데 국민은 그럼 누구 편이냐”며 “(대통령이) 법률가였던 적이 있어 그런지 법에 걸리는 행동은 안 했을지 몰라도 나라 질서는 다 무너뜨려 놓았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도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교육이 심각하게 하향 평준화되는 지금의 세태를 엄중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문 정부가 추진했던 국공립대 공동학위제와 같은 대학 평준화 정책을 예시로 들었다. 그는 앞으로 대학 경쟁력이 50년, 100년의 국가 경쟁력과 미래를 좌지우지한다고 봤는데, 이때 선의의 경쟁을 못 하게 하고 대학 발전을 가로막는 평준화 정책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 설명에 따르면 평준화 자체가 자유와 창의의 억압을 의미하는데, 상향 평준화는 불가능하고 하향 평준화는 죄악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식과 사상을 평준화하자는 발상은 인류를 무너뜨릴 만큼 위험한 생각”이라며 “자연에도 평준화라는 개념은 없다”고 말했다.
제한된 인터뷰 시간이 다 되어 이동하는 중에도 아쉬운 마음에 계속 질문을 던졌다. 단편적으로 이어진 질문과 대답은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했다.
- 젊은 세대에서는 젠더 갈등이 극심한데요. 남녀 생각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요. “다 똑같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장미꽃이 예쁘다고 해서 정원에 장미꽃만 있으면 심심하거든요. 남성과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다르기 때문에 조화로운 거예요. 다만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사회적으로 유능한 사람이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인정해야 해요. 예를 들어 내가 교수이고 내 친구는 사업가인데, 나는 가르치는 일을 더 잘하고 친구가 사업을 더 잘 벌이는 것은 당연하죠.”
- 통일은 꼭 해야 하나요. “지금 보면 북한은 너무 북한식으로 가고 대한민국은 너무 자유주의로 굳어졌기 때문에 통일은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통일을 한다고 수준이 올라간 대한민국 사회를 북한 수준으로 낮출 수는 없는 거거든요. 떨어진 북한 사회가 올라오는 게 맞죠. 그럼 그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통일이라는 가치에 얽매여서 서두르지 말고, 북한의 사회·교육·정치·문화가 한국 사회만큼 올라올 때까지를 기다려야 해요. 과거 공산주의가 급변한 걸 보면 북한도 돌발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있어요. 그동안 인적 교류, 문화 교류, 경제적 교류가 이어지는 상황까지만 돼도 충분해요.”
-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시는 것은. “있어도 빨리 잊어버리려고 하죠. 오래 집착하는 사람이 손해예요. 또 후회하니까 성장하는 거죠. 과거를 바꿀 수도 없는데 후회만 하기보다는 성장할 수 있게 잘 생각하려고 해요. 실수를 복기하면서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게 한다든지, 내 후배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쓴다든지 말이에요.”
-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신 점은. “내가 그 힘든 세월을 어떻게 이겨냈나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참 대견해요. 일제강점기에는 별일이 없어도 일본 경찰에 쫓겼고 숨는 일이 다반사였거든요. 6·25전쟁 때 난리통이나 월남할 때를 생각하면 참 아득해요. 특히 3·8선을 넘다가 잡히고, 천만다행으로 탈출할 때의 그 생각을 지금 하면 지금의 5분, 10분도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어요.”
- 젊은 친구들은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거나 귀찮아해요. 이게 잘못된 걸까요. “잘못이다 아니다 하고 말할 순 없어요. 개인의 자유니까요. 하지만 사랑을 안 하는 건 인생의 큰 손해예요. 실연을 당하더라도 사랑은 해야 해요.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거든요. 내가 지금까지도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이 우리 동갑내기 친구 철학자들이었던 안병욱, 김태길 선생이에요. 이 친구들이 세상을 떠난 지 지금 9년, 10년이 넘어가는데도 아직도 가끔은 옆에 있는 것 같아요. 내 생에 이 친구들을 만나 참 행복했어요. 그러니 젊은 친구들, 꼭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또 친구가 되세요. 안 그러면 인생 손해 보는 거예요.”
조윤정 기자 wastrada0721@chosun.com
출처 : [건강]뼈 튼튼 당뇨 예방 ‘비타민K’ 먹으려면 외식 때 이 메뉴!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