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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형석의 100세 일기] 책 장사가 본업은 아니었는데…
작성자 인문학박물관관리자 날짜 2021-02-26 15:06:00 조회수 887

전쟁 때문에 학교교육을 받아 보지 못한 할머니가 집안일을 도와준 적이 있다. 자주 들르는 동네 가겟집 사람들이 선생님이 어떻게 지내시느냐고 물으면 “학교에는 안 나가시고 공부만 하시는데 요사이는 책 장사를 하시는 것 같다”고 해 한때는 책 장사 할아버지가 되기도 했다.

일러스트= 김영석
일러스트= 김영석

지난 일 년 동안 코로나19 때문에 강연을 비롯한 대외 활동이 줄어드니까, 다시 한번 본업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비교적 많은 책을 썼다. 자랑거리는 되지 못하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생각 못 했던 독자들이 감사의 뜻을 전할 때는 더욱 그렇다. S 장관은 4·19 이후에 감옥에 머물게 되었는데, 내 책을 읽었다면서 고마워했다. 영락교회의 박 목사는 전두환 대통령의 괘씸죄에 걸려 구속되었을 때 내 책을 읽었다면서 감사해했다.

한번은 지방 강연을 갔다. 북한에서 간첩으로 파송되었다가 귀순한 우모씨의 정중한 인사를 받았다. 평양에서 간첩 교육을 받을 때 내 책 두세 권을 읽은 것이 자기 인생을 바꾸었다면서 감격스러워했다. 월남 전선에서 전우들과 내 얘기를 나눴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한국 교회와 대한민국을 지켜달라면서 기도를 드렸다는 내용도 곁들여 있었다.

고등학생 때 내 책을 읽은 학생들이 직접 신학 전공을 택하지 않고 철학과를 거친 후에 신학자가 된 것을 감사히 여긴다고도 하였다. 인문학적 소양이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인간학적인 문제를 배제한 신학이나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같은 기독교이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거리는 작지 않다. 나도 두 교단 사이에서 고민해 왔다. 그러나 대학 동창인 김수환 추기경이나 제자인 정진석 추기경 사이에서는 신앙적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다. 신앙의 근본적 문제 해결에는 공통점이 더 중하기 때문이다. 내 책을 읽은 신부님들의 초청으로 성당에서 강연을 하는 기회도 갖는다.


강북에 있는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는 스님들이 카페에 들르곤 한다. 원로 스님 한 분은 언제나 나와 정중한 인사를 나눈다. 역시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다.

6년 전쯤이었을까? ‘이와우’ 출판사의 젊은 사장이 찾아왔다. 절판된 ‘예수'를 다시 출판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이유는 자기가 출판업을 하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었는데, 꼭 출판하라”면서 내놓은 책이어서 거절할 수 없었다는 사연이었다. 그 책은 ‘어떻게 믿을 것인가'와 함께 다시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내가 정성 들여 쓴 철학책들은 별로 인기가 없다. ‘윤리학’은 몇 대학에서 교재가 되었으나 ‘역사철학’과 ‘종교의 철학적 이해’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수필‧종교 그리고 철학의 순서가 된 것 같다.

지금은 나도 조금은 철이 든 셈이다. 책 장사는 수입이나 명예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독자들과 ‘삶의 의미’를 위해 대화를 나누고 공감과 작은 선물이라도 남겨줄 수 있으면 감사와 보람을 갖는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출 처 : 

[김형석의 100세 일기] 책 장사가 본업은 아니었는데… - 조선일보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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