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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김형석의 100세일기] "100세 넘은 손님은 무료입니다"
작성자 인문학박물관관리자 날짜 2020-05-09 14:17:58 조회수 5739
[아무튼, 주말]
일러스트= 김영석
일러스트= 김영석
지방에서 올라온 제자와 서울 평창동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한 가장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나가다가 정중히 인사를 했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나와의 관계를 때때로 얘기해 준다"면서 감사의 뜻을 전했다. 내가 그분의 부모님 결혼 주례를 서 주었다는 것이다. 나도 일어서서 인사를 나누었다.

함께 식사를 끝내고 아래층 계산대로 간 제자가 "선생님, 이럴 땐 어떻게 인사를 하면 좋지요?" 하고 물었다. 나에게 인사했던 사람이 우리 식대까지 지불하고 간 것이다. 나도 약간 난처해졌다. 그래서 "잘되었네요. 또 서울에 오는 기회가 생기면 오늘 받지 못한 접대를 기다릴게요"라고 했다. 제자는 "제가 선생님을 통해 받은 고마움이니까 두 배로 갚겠습니다"라며 웃었다. 차에서 내릴 때는 "이런 것이 다 100세까지 산 축복이야. 미안해할 것 없어"라면서 헤어졌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근사한 일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외식이 어려운 때였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서대문구 홍은동 S호텔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경치도 좋고 호텔 공간이 무척 넓은 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쉽고 깨끗한 공기도 야외와 별로 차이가 없는 곳이다.

후배 몇 사람과 상의하다가 내가 추천해 그곳에서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식사가 끝날 때쯤 되었다. 식대 책임을 진 후배가 카운터에 갔다 오더니 "교수님 식대는 호텔에서 대접한다면서 한 사람분은 감해 주었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되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치미를 떼고 "이 호텔에서는 100세가 넘은 손님에게는 무료로 서비스하게 되어 있을 겁니다"라고 했다.

후배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런 특혜가 다 있어요?"라는 후배, "내가 그 혜택을 받으려면 17년을 더 살아야 하겠는데요"라면서 웃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카운터에 다녀온 후배는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 말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할 수 없이 내가 입을 열었다. 한 달쯤 전부터 혼자 식사를 하고 나면 "우리가 식사 대접을 해 드리는 것이니까, 그대로 가셔도 됩니다"라는 인사를 받았다. 동행이 있을 경우 내 식대는 감해주곤 했다. 팀장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호텔 회장님께서 교수님을 보시고 '저 어른이 오시게 되면 무료로 봉사해 드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라는 것이다.

내 얘기를 들은 후배들은 아직도 세상에 살맛이 남아 있다면서 흐뭇해했다. 자기네 일처럼 고맙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나도 마음이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더 많다고 말하였다. 웃으면서 "여러분도 100세가 넘도록 살아보세요. 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들 겁니다"라고 해 모두 웃었다. 식사보다도 마음의 분위기가 더 아름다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08/20200508024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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