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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형석 100세일기] 난 전국에 별장이 있다
작성자 인문학박물관관리자 날짜 2020-09-08 09:07:07 조회수 57

지난 7월 말쯤이다. “선생님, 코로나 사태도 좀 진정된 것 같은데 강릉 별장에 한번 다녀오지 않으시겠어요? 요사이는 기차 편이 더 좋아졌기 때문에 제가 모실 수 있습니다” 하는 제자의 전화였다. 전에는 늘 ‘교수님’이라 부르곤 했는데 자기들이 교수가 되면서부터는 ‘선생님’으로 호칭이 승격됐다.

내가 강릉에 별장을 갖게 된 데는 좀 거북스러운 사연이 있다. 몇 해 전에 제자에게 “해수욕 계절이 되기 전후는 조용해서 좋으니까 내 별장에 같이 가면 어떠냐”고 얘기한 적이 있다. 믿고 따라 온 제자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바닷가에 있는 현대 아산호텔로 갔다. 바다 구경을 하면서 커피를 마시던 제자가 “별장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이 호텔이 별장인데 언제나 예약만 하면 올 수 있다”고 했다. 제자는 ‘농담치고는 좀 지나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다음부터는 현대호텔이 우리의 별장이 된 셈이다.

따지고 보면 내 별장은 여러 곳이다. 제주에도 두세 곳이 있고 여수에도 있다. 춘천은 물론 양양에도 생겼다.

이런 별장 철학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이 용인에 시설을 만들면서 자신을 위한 별장을 지었다. 처음에는 주말마다 들르기도 하고 때로는 손님들을 초청하기도 했으나 세월이 지나고 많은 일 처리 때문에 서울 집과 사무실을 비울 수가 없게 됐다. 그 별장이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했다.

먼저 부자들이 생기고 먼저 자본주의의 혜택을 많이 받은 미국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요트와 별장은 생길 때 좋지만 처분한 뒤에 더 행복해진다는 얘기다. 나도 한때는 ‘별장이라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들도 데리고 함께 여유로운 시간도 가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자식들은 작년 말부터 내 100세 잔치(지난 4월)를 계획했다. 미국에 사는 자식들은 “일본 교토나 호주를 거쳐 한국에 들어가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코로나가 모든 계획을 헝클어버렸고 100세 잔치도 열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내 가족들이 이용하는 ‘별장 아닌 호텔’은 세계 어디에나 있는 셈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소유해야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용하고 즐기는 사람이 주인이 되고 더 행복해지는 세상이다.

정년이 돼 연세대학을 떠난 지 35년이다. 집이 대학 부근이기 때문에 세브란스병원의 혜택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면서 지낸다. 모친과 아내가 말년에 세브란스에서 치료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요사이는 나이 때문일까. 나도 내과는 물론 안과, 치과를 자주 이용하며 의사와 간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만약 ‘세브란스는 수많은 환자와 함께 나를 위한 병원이다’라고 말하면 큰 잘못일까. 나는 그 훌륭한 시설의 혜택을 받아 누리면서 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소유욕만 버리면 사랑이 있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출 처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0/09/05/ESKQTEQ27JHQJJ3NGUVSOSJGUU/?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