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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100세 철학자, 그 지성의 길이와 깊이
작성자 인문학박물관관리자 날짜 2020-03-31 10:41:36 조회수 5988
  •  크리스찬북뉴스
  •  
  •  승인 2020.03.26 13:04
 

[책 소개] 김형석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두란노)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걸음> / 김형석 지음 / 두란노 펴냄 / 252쪽 / 1만 4000원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더 깊은 이해의 걸음>/ 김형석 지음 / 두란노 펴냄 / 252쪽 / 1만 4000원

대한민국 1970~1980년대를 이끌었던 시대의 지성이 있었다. 김동길(1928~현재), 이어령(1934~현재), 안병욱(1920~2013), 그리고 김형석(1920~현재)은 대표적인 사상가였다. 이어령 박사는 크리스천이 되어 기독교적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죽음의 날까지 저술 활동을 할 것 같다. 김형석 박사는 가장 지성인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100세 나이에도 변함없이 학문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100세에도 건강과 지성을 보일 수 있는 체력에 대해서, 김형석 박사는 50대부터 꾸준하게 해 온 수영과 소식小食, 꾸준한 일 때문이라고 술회했다. 김형석 박사의 신간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두란노)를 보면, 학문의 무게보다 인생 경륜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1970~1980년대 우리 사상가들은 철학적 글쓰기로 청년들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선물했다. 그 당시 철학자들에게서 기독교적 색체는 느끼지 못했다. 이어령 박사는 노년에 회심했고, 김형석 박사는 기독교 철학자로 활동했지만, 주로 철학과 사상에 대한 저술을 펼쳤다. 그런데 노후에 다수의 기독교 사색 저술을 내놓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라는 저술은 2020년 1월 출판되었다.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김형석'이란 사인은 마치 저자에게 직접 선물을 받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100세 저자의 저술을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이다. 우리는 50대부터 기억력이 감퇴한다고들 하는데, 원리적으로 학문의 능력은 나이와 관계없다. 김형석 박사가 그대로 증명해 주었다. 우리 시대 많은 노익장이 학문과 활동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위인이 김형석 박사일 것이다. 철학자의 노년에 기독교 에세이를 제시하는 것은 좋은 의미를 갖는다.

다만 철학자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제시하는 것에 한계는 있다. 그 한 예는 복음을 제시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소식이 나타나 전해진 것"이라 한 부분이다. 일반적인 제시이고 신학적인 제시로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인간 이해의 깊이를 알게 하는 유익을 크게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가 신학적 깊이가 아닌 인문학적 깊이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저명한 철학자가 기독교적 인문학을 펼치는 사상을 보는 가치와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신학자들이 기독교적 인문학을 어떻게 펼치는지 비교될 수 있는 작품을 기대해 보자. 인문학은 기술 문명으로 치닫는 인류 사회에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호흡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인문학이 부족하다면, 기술과 자본으로 호흡하면서 비인간화한 자신을 도저히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악의 가장 무서운 단면은, 자기 자신의 악을 순수 선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파괴되는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편은 독서이다. 디지털 사회,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독서라고 한다. 우리는 인터넷을 중지하려고 하지 말고, 인터넷과 함께 많은 독서를 하면 중독이 아닌 좋은 정보를 해결하는 지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독서 목록에서 인문학 관련 저술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김형석 박사의 저술은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일 것이다. 김 박사는 언제나 잔잔하고 깊은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었다. 100세 인생에서 그의 작품은 인생의 동반자였는데, 우리 사회에 그러한 사상적 동반자가 있는 것이 복되다.

필자는 김형석 박사의 저술에 대한 평가에 어떤 의미도 두고 싶지 않다. 100세 노철학자의 경륜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철학자는 아니더라도 100세 나이에 자기 생각을 가족과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건강과 지성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고경태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 담임목사

출처 :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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