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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김형석의 100세일기] 011 폴더폰, 너도 나만큼 늙었으니 그만 쉬게나
작성자 인문학박물관관리자 날짜 2020-08-28 09:42:58 조회수 5732

지난 금요일에는 아주 좋은 일이 생겼다.

몇 해 동안 구형 휴대폰(폴더폰)을 사용해 왔다. 요사이 SK텔레콤에서 문자 메시지가 자주 온다. 011로 시작하는 전화번호가 소멸되고 010으로 바뀌며 중간에 세 자리가 아닌 네 자리가 되니까, 7월이 가기 전에 전화기를 바꾸라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스마트폰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나 같은 늙은이는 복잡한 스마트폰을 쓸 자신도 없고,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을 못 쓰게 되면 큰일이다.

나는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전등이 없는 시골에서 자랐다. 6·25전쟁 뒤에는 전화기를 갖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래도 다른 친구들보다는 일찍 전화기가 생겼다. 50대1이나 되는 제비뽑기에 당첨된 덕분이었다. 지금은 미국에 사는 권영배 목사가 가족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광화문까지 갔다가 당첨됐다는 소식을 전해줄 정도였다.

그러고도 2년쯤 후였다. 아침 이른 시간에 김태길 교수가 전화를 걸어 왔다. 어젯밤 전화가 설치되었는데 시운전할 곳이 없어 나한테 걸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자주 통화하게 되었다면서, 옆에서 부인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끊겠다는 얘기였다.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무척 행복한 음성이었다.

국제전화는 말할 필요도 없다. 춘원의 부인이 미국에 있는 따님에게 편지로 '20일쯤 후 어느 날 몇 시에 전화를 걸 테니까 준비하라'는 연락을 했다. 약속한 시간에 전화를 받은 따님이 말을 못 하고 울먹였다. 모친이 "너, 울 시간이 어디 있냐? 전화 요금이 얼만데…"라고 타일렀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다음에는 공중전화 전성시대가 왔다. 서울역이나 김포공항에 공중전화가 여러 대 설치되었고 전화기 앞에는 20명 정도가 줄을 서곤 했다. 그러다가 휴대전화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그 혜택을 내 세대 사람들도 잘 누려왔다. 그 정도에서 멈추었으면 좋겠는데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말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 변화를 감당할 수 없어 전화만 걸고 받는 구형 폴더폰으로 만족하고 있다. 스마트폰까지 따라갈 재간은 물론 용기까지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엔 혼자서는 해결할 자신이 없었다. 도움을 받아 LG 휴대폰 센터로 갔다. 내 고충을 들은 직원이 고맙게도 지금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한 작은 전화기를 보여주면서 사용법까지 설명해 주었다. 어린 학생들과 나 같은 노인네들을 위해 갖추어 둔 전화기였다. 집에 돌아와 새 전화기 에게 "네 친구는 나만큼이나 늙었으니까 쉬게 하고 오늘부턴 네가 나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속삭였다.

90대에 접어들게 되면 두 가지를 버려야 나 자신을 지켜갈 수 있다. 필요 없는 소유욕과 따라갈 수 없는 문명의 이기다. 하지만 학문과 예술은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더 오래 즐길 수 있다. 아름다운 인간관계, 즉 성실과 사랑은 눈감을 때까지 연장하고 싶어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10/20200710024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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